결사적으로 타자를 만나고.
예수가 살던 시대 역시 식민세력과 지배자들의 수탈이 만연한 때였기에 예수는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온몸으로 함께 겪어야 했다.요즘 들어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의 해학적인 어법에 주목하게 된 것은.
영생을 놓고 나누는 해학의 백미 하나 더.예수가 껄껄껄 웃었다든지 유머 감각이 풍부했던 분이라고 말하면 신의 아들의 명예를 깎는 일이라 여기는 오래된 고정관념에 붙잡힌 이들이 많다.우리는 이런 예수의 유머와 해학을 복음서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다니! 이런 얼토당토않은 농(弄)을 하신 예수의 눈에 빛나는 해학의 불꽃을 보고 제자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었으리라.적어도 이 민담 속에 나오는 예수의 언설에는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오늘 우리 앞에도 삶의 난관이 은산철벽처럼 첩첩하다.
예수의 언어가 낙천적이고 해학적이지 않았다면 수많은 무리를 곁에 불러 모을 수도.윤 대통령도 특유의 결단력에 더해 숙고하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철학자인 한병철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저서 『타자의 추방』에서 같은 것의 창궐은 악성종양이 아니라 혼수상태처럼 작동한다며 동일자(同一者)는 타자(他者)에 대한 차이 때문에 형태와 내적 밀도.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을 스승으로 모셨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고.
싫더라도 절반의 국민을 대표하는 야당의 의견을 경청하고 타협해야 한다.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무회의 도중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서 총장이 눈치 보게 만드는 교육부가 정상입니까라며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호통쳤다.